딸랑구 킥보드 사주다 아빠 킥보드까지 사버림
5월은 어린이날
어린이날을 맞아 딸랑구에게 킥보드를 사줬다. 그런데 킥보드를 고르는 내내 정작 사주는 내가 더 설레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꽤 오래전부터 킥보드를 하나 갖고 싶었다.
예전부터 킥보드는 도시에서 꽤 합리적인 이동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보다 작고, 접으면 보관하기 쉽고, 가까운 거리는 걷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휴대성, 친환경성, 기동성.
이 세 가지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딸랑구랑 같이 킥보드를 타고 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것도 하나 사볼까 싶어 찾아봤다.
원조격 브랜드의 신형 모델은 가격이 30만 원을 넘었다. 물론 좋은 물건이겠지만, 킥보드에 30만 원을 태우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결국 답은 당근
마침 집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매물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상태도 나쁘지 않아 보여 바로 거래를 잡았다. 판매 장소가 가까워서 그냥 걸어갔다. 거래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박스가 생각보다 컸다.
들고 오면 되겠지 싶었는데, 은근히 크고 무거웠다. 집까지 낑낑대며 들고 오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 이거 타고 오면 됐잖아…”
킥보드를 사러 가서 킥보드를 들고 온 사람… 나야 나…
집에 와서 박스를 열어봤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처음엔 조금 걱정도 됐다. 킥보드는 결국 몸을 싣고 타는 물건이라, 싸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삼천리가 자전거 짬밥이 있는데 괜찮겠지 싶었다.
개봉기
박스를 열어보니 킥보드는 꽤 컴팩트하게 접혀 있었다. 실제로 타고 다니다가 접으면 딱 그런 모양이다. 생각보다 부피가 작아 보관하기 좋았다. 현관 한쪽에 세워둬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만 대중교통과 연계해서 쓰려면 전용 가방은 필요할 것 같다. 바퀴에 흙 묻은 채로 그냥 들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엔 조금 민망하다.
조립은 어렵지 않았다. 구조가 단순해서 설명서를 조금만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핸들이나 튜브를 고정하는 장치는 생각보다 조악해 보여 살짝 실망했다.
‘아,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그런데 나중에 보니 30만 원 넘는 모델들도 고정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킥보드라는 물건 자체가 원래 이렇게 단순한 기계였던 모양이다.
접히는 방식은 조금 특이했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싶었는데, 몇 번 접었다 펴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손에 익으면 30초 안에 전부 접고 펼 수 있을 정도다.
사용기
몇 주 동안 집 근처에 밥 먹으러 가거나, 잠깐 마실 나갈 때 타봤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어른이 킥보드를 탄다는 것 자체가 뭔가 낯설었다. 하지만 몇 번 발을 굴러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확실히 기동성은 좋다. 걸어가긴 애매하고 차를 타긴 과한 거리에서 딱이다.
특히 더운 날에는 만족도가 크다. 땀 흘리며 걷는 대신 킥보드로 슥 이동하면 훨씬 쾌적하다. 그렇다고 운동이 전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계속 한쪽 발로 밀어야 해서 생각보다 몸을 쓰게 된다. 재미와 운동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물건이다.
대신 승차감은 기대하면 안 된다.
서스펜션이 없다 보니 노면 상태가 그대로 전해진다.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한 곳에서는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지면 정보를 실시간 수신하게 된다. 데카트론 킥보드 중에는 서스펜션이 달린 모델도 있던데, 그 승차감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주의할 점도 있다. 젖은 바닥이나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바퀴에 홈이 없기 때문에 마찰력이 너무 부족하다. 아이가 탈 때는 헬멧이 필수고, 어른도 안전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마치며
좀 타보니, 내가 왜 킥보드를 갖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삶’의 이미지와 닿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가까운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가볍게 몸을 움직여 이동하고, 그러면서도 조금 재미있는 것. 거창하게 환경을 보호한다고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래도 차 대신 킥보드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괜히 뿌듯하다.
동네 마실용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빠르고, 작고, 보관하기 쉽고, 은근히 재미있다. 딸랑구가 조금 더 크면 같이 킥보드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누가 더 신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나겠지.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어른이 타면 너무 철딱서니 없어 보인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재미있으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