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바베큐 도전
첫 바베큐의 기록.
7일 전
아무 데서나 불을 피울 수는 없으니, 먼저 바베큐가 가능한 장소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랫동네에 살 때는 바닷가에서 간단히 불을 피워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수도권에서는 제한되는 곳이 훨씬 많았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전국 자연휴양림 예약에서 바베큐 가능한 캠핑 데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수도권은 금요일·토요일 예약이 거의 전쟁이라, 일요일로 날짜를 잡으면 그나마 수월하다. 그래도 쉽지는 않았다.
4일 전
두께 5cm의 토마호크를 굽기 위해서는 최소 3일은 냉장 해동을 해야 한다. 그러니 고기 주문은 4일 전이 적절했다. 뼈를 포함한 토마호크는 무게 감이 잘 안 오는데, 1.25kg 정도면 많이 먹는 2명, 일반적으로는 3명까지 충분하다고 한다. 우리는 아기가 1명 있으니 1.1kg짜리로 주문했다.
3일 전
고기가 하루 만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커서 순간 당황했다. 느리지만 가장 맛있게 해동되는 방식은 얼음물에 담가 냉장고에서 천천히 녹이는 방법인데, 이 크기의 토마호크가 들어갈 통을 가진 집이 많지는 않다. 잠시 고민하다가 배송된 스티로폼 박스를 활용하기로 했다.
결과는 완벽. 사이즈도 딱 맞고 보냉도 좋았다. 해동은 4일 추천.
1일 전
냉장 상태를 계속 확인했는데, 고기가 워낙 두꺼워 해동 속도가 매우 느렸다. 조금 긴장돼서 전날 아침부터 얼음물에서 꺼내 일반 냉장 상태로 두었다. 얼음물 방식만 사용할 거면 3일로는 부족할 듯하다.
저녁이 되니 적당히 해동이 되어 염지 시작. 먼저 키친타올로 표면의 핏물을 제거하고,
소금과 후추를 전체적으로 고르게 뿌렸다. 옆면도 잊지 않았다.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니, 하룻밤 사이 삼투압으로 표면 소금이 녹고 육즙이 촉촉하게 올라왔다.
당일
2시간 반 전
사이트 도착 후 바로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실온에 두었다. 결론적으로는 심부 온도는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결국 6도에서 시작하게 됐다. 다음부터는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실온에 꺼내놓는 게 낫겠다.
2시간 전
훈연칩 한 줌을 30분 동안 물에 불렸다. 이 작은 준비가 고기 맛에 큰 영향을 준다. 차콜 위에 올리니 생각보다 연기가 많이 나 놀랐지만, 훈연 바비큐에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차콜은 브리켓 12개로 시작했다. 침니스타터에 넣으면 자동으로 불이 붙을 줄 알았는데, 양이 너무 적어서인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침니스타터가 대형이라 생긴 문제 같았다. 소형 침니스타터가 필요하다는 결론.
1시간 반 전
심부 온도계를 세팅하니 여전히 6도. 목표는 그릴 내부 온도를 120~130도로 유지하며 약 1시간 천천히 익히는 것.
미디엄 레어를 위해 고기를 숯이 있는 방향에 뼈가 오도록 두고, 뚜껑 벤트는 고기 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 배치는 공기 흐름상 훈연 효과를 극대화하지만, 뚜껑 온도계가 숯 위쪽에 있어 정확한 내부 온도를 읽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심부 온도만 믿고 조리를 진행해야 했다. 다행히 숯 양을 적절히 넣어 큰 실패는 없었다.
훈연 중간, 심부온도 약 42도 일때
한 번 뒤집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생각보다 색이 그럴싸해서 한숨 놓았다. 이 때 훈연칩을 한 번 더 놓으면 좋았을건데, 그러지 못했다.
30분 전
고기를 꺼내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고, 바인딩을 위해 올리브 오일을 발랐다. 시즈닝 후 콜드그레이트에 45초씩 양면 2회(총 4회) 시어링. 심부 온도가 더 익을까 걱정돼 살짝 조심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과감하게 해도 됐을 듯하다.
시어링 후 버터를 넣어 랩핑하고 15분간 레스팅. 사은품으로 받은 소스 세트 덕분에 이 과정이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레스팅 한 후 잔불로 가니쉬인 양파를 구웠다. 이때 감자도 넣었는데, 오히려 감자는 처음 불 넣을때 같이 넣어서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대망의 커팅
레스팅 후 새우살 부분을 포함해 큼직하게 잘랐는데, 힘줄이 있어 식감이 아쉬웠다. 다음에는 새우살만 따로 자르는 방식으로 해야겠다.
전체적으로 약간 덜 익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는 심부 온도는 맞췄지만 시어링이 약해서 생긴 결과 같다. 그래도 먹기에는 충분히 훌륭했다. 아기가 박수치며 폭풍흡입해서 웃음이 났다.
훈연향이 은은해 좋았는데, 칩을 한 번 더 넣었다면 더 풍부했을 듯. 그릴이 커서 양파가 틈 사이로 계속 떨어진 것도 은근 스트레스였다. 그릴 바스켓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회고
잘한 점
- 일주일 전부터 일정에 맞춰 철저히 준비했다.
- 전날 체크리스트를 정리해 큰 실수 없이 진행했다.
문제점
- 고기 심부 온도가 너무 낮게 시작했다.
- 침니스타터가 대형이라 착화가 애매했다.
- 드립팬을 가져갔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 중간에 훈연칩을 추가하지 못했다.
- 야채 준비는 전날에 했어야 했다.
- 시어링용 숯 준비가 늦었다.
- 칼·테이블·그릇 준비가 부족했다.
- 조명과 난방 준비도 미흡했다.
결론
공기 좋은 곳에서 가족과 함께 바비큐를 구워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첫 시도 치고 고기도 꽤 훌륭하게 나왔고, 무엇보다 아기가 맛있게 먹어줘서 더 뿌듯했다.
준비 과정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첫 경험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중요한 건 직접 해보는 것. 해보면 다음엔 더 나아진다.
가족 캠핑 데뷔, 성공! 앞으로도 자주 나와 소중한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겠다.